[Connecting the Dots]
6년의 침묵을 깨고,다시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
1. 4번의 도전, 두 번의 2차 낙방… 그리고 다시 마주한 절망…
2020년 7월, 호기롭게 시작한 변리사 수험 생활이 어느덧 6년을 채웠습니다.
1~2문제 차이로 4번의 도전 끝에 어렵게 1차 시험에 합격했지만,
1차 합격자에게 주어지는 두 번의 2차 시험 기회에서 모두 불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던 이번 1차 시험에서, 또 1~2문제 차이로 고배를 마셨습니다.
합격의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는 계속되는 좌절 앞에서,
문득 제 인생 전체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내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짙은 무력감 속에서 저는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제 과거를 찬찬히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과거에 찍어온 수많은 경험의 점(Dots)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2. 창업을 향한 열정, 그리고 현실적인 불안감에 따른 취업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저는 본래 기계공학과 학생이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교 3학년으로 복학했을 무렵,
제 마음속에는 ‘창업’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강한 흥미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동기들이 취업을 목표로 전공 학점 관리에만 몰두할 때,
저는 비즈니스의 생태계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과감하게 ‘시스템경영공학과’ 복수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나아가 교내 창업동아리 부회장을 맡으며,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수많은 예비 창업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비즈니스를 꿈꾸는 사람들과 곁에서 함께 고민하고 부딪혔던 그때가,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가슴 뛰고 즐거웠던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졸업이 다가오자, 당장의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불안감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창업이라는 불확실한 도전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
다행히도 제게는 다행히 쌓아뒀던 무기가 있었습니다.
남들이 취업 준비에 전념할 때 저는 두 개의 전공과 동아리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다행히 4.0에 가까운 학점을 유지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 성실함과 노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저는 큰 어려움 없이 대기업에 합격해 자동차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3. 만류를 무릅쓴 도전, 대기업 연구원에서 헬스 트레이너로
연봉과 워라밸이 보장된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지만, 거대한 조직 속에서 저는 점차 생기를 잃어갔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저는 회사에 이렇다 할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도,
매달 월급은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그 기묘한 안락함 속에서 저는 저의 ‘존재 가치’를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저는 퇴근 후 헬스장에서 PT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헬스 트레이너’라는 직업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조직의 간판에 기대는 대신, 자신이 땀 흘려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보상받는 모습이 멋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를 가르쳐 주시던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은 제가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고 하자 적극 만류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새로운 길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습니다.
결국 저는 망설임 없이 대기업 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을 과감히 내려놓고,
‘국가공인 체육지도사 자격증’과 미국에서도 헬스트레이너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여,
헬스 트레이너 업계에 당찬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4. 1년의 트레이너 생활, 영업의 딜레마에서 마케팅에 매료되다
트레이너로서 저의 1회 PT 비용은 경력에 비해 높게 측정된 77,000원이었습니다.
회원분들이 지불하는 큰 금액에 합당한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운동과 인체에 대해 진지하게 파고들며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헬스장의 현실은 제가 기대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회원들에게 계속해서 PT를 결제하게 만드는 것이 매출의 핵심이었고,
어느 순간 저는 회원의 몸을 변화시키는 트레이너라기보다,
매달 실적을 채워야 하는 ‘영업사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치열한 영업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고객에게 저만의 강점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화려한 경력이나 능수능란한 영업 스킬은 베테랑 트레이너들에 비해 한참 부족했기에,
저는 제가 그들보다 낫다고 자부하는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과
‘회원들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부각하기로 했습니다.
저의 이런 분석적이고 학구적인 강점을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고 설득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풀기 위해 관련 지식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케팅’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마케터로 전향한 것은 결코 트레이너 업무가 싫거나 영업의 압박에서 도망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영업을 위한 생존 전략으로 시작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타겟을 분석하고 나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제안하는
마케팅 과정 자체에 강렬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의 흐름을 읽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 순수하게 매료되었고,
결국 이 열정은 제가 짧다면 짧은 1년여 동안의 트레이너 생활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마케터의 길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5. 스마트스토어 창업과 상표권의 교훈, 순수하게 즐거웠던 마케터 생활
마케터로 전향한 후, 저는 먼저 이 지식을 실물 경제에 직접 적용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헬스기구를 판매하는 ‘스마트스토어’를 만들었습니다.
내가 배운 마케팅 이론을 실물 상품 판매에 적용하며 가설을 테스트하는 과정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예상보다 빠른 성과의 기쁨도 잠시, 생각지도 못한 ‘상표권 침해 경고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다양한 마케팅으로 고객을 모아도, 내 비즈니스를 지켜줄 지식재산권(IP)이라는 방패가 없으면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을 현장에서 제대로 배운 실전 수업이었습니다.
이후 비즈니스 구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실무 능력을 키우기 위해
100억원의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에 운 좋게 퍼포먼스 마케터로 합류했습니다.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꼼꼼히 분석하며,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마케터로서의 삶은
제 적성에도 무척 잘 맞았고 대기업 때 받았던 연봉의 절반 이하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훨씬 일이 즐거웠습니다.
6. 우연한 인연, 다시 떠오른 창업동아리와 ‘교내 변리사’의 기억
그렇게 마케터로서 즐겁게 일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중,
우연히 지금의 아내(당시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제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전문직 집안의 아내를 만나 장인어른, 장모님과 대화를 나누며
저는 전문직만이 가질 수 있는 주도적인 삶과 고유한 매력에 대해 생생하게 듣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제게 전문직이라는 직업의 비전을 이야기해 주시며,
제 성향이라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며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적극적으로 권유해 주셨습니다.
가족들의 진심 어린 권유를 계기로 앞으로의 길을 깊이 고민하던 순간,
가슴 한편에 묻어두었던 대학 시절의 잊지 못할 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창업동아리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들을 마주했을 때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느꼈다는 사실,
그리고 당시 학생들의 거칠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온전히 ‘그 사람만의 고유한 자산’으로 만들어주시던 ‘교내 변리사’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기계공학 및 시스템경영공학 전공자이자 자동차 연구원으로서의 기술적 이해도,
마케터로서 성과를 내며 체득한 비즈니스 감각,
그리고 스마트스토어 창업 과정에서 직접 겪은 상표권의 중요성.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엮어,
내가 가장 좋아했던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들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온전한 그들만의 가치로 만들어줄 수 있는 직업.”
그것이 바로 변리사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과거의 굴곡진 경험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운명처럼 변리사 수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7. 파편화된 경험들이 만들어낸 시너지
책상머리에 앉아 수험 공부만 하던 지난 6년.
거듭된 낙방 속에서 가끔은 제 과거의 잦은 도전들이 그저 헛된 방황은 아니었나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장인어른의 온라인 전문직 고시학원 플랫폼을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직접 세팅해 드리면서,
제 생각은 완전히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연구원 시절의 논리적 사고,
트레이너 시절 나의 강점을 어필하던 영업의 경험,
마케터 시절의 데이터 분석 능력 등의 자잘한 지식들이 결합되자,
비즈니스는 작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대기업, 트레이너, 마케터, 스마트스토어 창업까지…
이질적으로만 보였던 제 삶의 수많은 ‘점(Dots)’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마침내 변리사가 되는 순간, 이 경험들은 의뢰인의 비즈니스를 가장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아이디어에 가치를 더해 강력한 권리로 만들어주는 저만의 확실한 무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8. ‘정리의 늪’에서 ‘아웃풋의 바다’로
이번 낙방을 통해 제 수험 생활의 패인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케터 시절 즐겨 쓰던 Notion, Gitmind, Trello 같은 툴로
지식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만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실전에서 가치를 증명하는 아웃풋이 아닌, 그저 ‘공부하는 기분’만 내는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이제는 그저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것(Input)에 안주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세상 밖으로 치열하게 꺼내놓고 검증받는
아웃풋(Output)을 향해 제 모든 열정을 쏟아붓겠습니다.
앞으로 이곳 워드프레스에 저의 수험 기록과 더불어
비즈니스, 마케팅, AI, 그리고 지식재산권을 융합한 인사이트를 꾸준히 공유하겠습니다.
특히 제 관심분야인 헬스케어 관련 인사이트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단순한 수험생의 일기가 아닌,
기술과 비즈니스의 본질을 탐구하는 예비 변리사의 진짜 아웃풋을 담아내겠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예비 변리사가 아닌 진짜 변리사로서 거듭나겠습니다.
저의 시행착오와 흩어져 있던 점들이 어떻게 하나의 단단한 선으로 연결되는지,
나아가 여러분의 비즈니스에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지켜봐 주시겠습니까?
Connecting the dots. 저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